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5세 (문단 편집) == 고달팠던 개인사 == 살아생전 개인으로서의 삶은 우여곡절이 많았다. 물론 다른 친척들이나 군주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[[빌헬름 2세]]처럼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폐위되거나 총살까지 당한 [[니콜라이 2세]]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하지만.[* 그래도 빌헬름 2세는 다른 군주들과는 달리 군주제 폐지 이후로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네덜란드로 망명해서 천수를 누리다 갔다.] * 형 [[앨버트 빅터|앨버트 왕자]]와 동생들을 먼저 떠나보냈다. 조지 5세는 형과 우애가 좋았으며 동생들과도 사이가 좋았다. 형 앨버트와 남동생 알렉산더 존은 요절했으며, 여동생들인 [[프린세스 로열 루이즈|루이즈]](1867년 ~ [[1931년]]), 빅토리아(1868년 ~ [[1935년]] [[12월 1일]]), [[웨일스의 모드|모드]](1869년 ~ [[1938년]] [[11월 20일]]) 중 루이즈와 빅토리아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조지 5세는 큰 실의에 빠졌고[* 특히 빅토리아와 사이가 좋았다. 빅토리아가 사망한 1달 뒤, 조지 5세 본인도 사망했다.], 말썽 부리는 자식들, 두 여동생들의 죽음, 사촌들이 [[끔살]], 폐위되는 상황 속에서 [[노르웨이]]로 시집갔던 막내 여동생 모드 왕비도 점차 위독해지자 '이제 짐의 시대는 끝난 것 같다.'며 비통해하다가 세상을 떴다.[* 다만 모드 왕비는 둘째 오빠 조지 5세가 사망한 2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.] * 연인과 이어지지 못했다. 조지 5세는 사촌 여동생 [[에든버러의 마리]][* [[빅토리아 여왕]]과 [[앨버트 공]]의 2남 [[알프레트(작센코부르크고타)|에든버러 공작 알프레드 왕자]]의 장녀이다.]를 사랑했지만 양쪽 모친의 반대로 결혼은 성사되지 않았다. 이후 에든버러의 마리는 [[루마니아]]의 [[페르디난드 1세]]와 결혼했지만, 사이가 나쁜 남편과 불화하며 결혼 생활 내내 고생하면서 살았다. 그래도 조지 5세는 [[테크의 메리]]와 정략결혼했지만 금슬은 좋았으며 슬하에 많은 자식을 낳았다. 현재도 영국 왕실은 조지 5세와 메리 부부의 후손[* 장남 에드워드 8세, 차남 조지 6세, 손녀 엘리자베스 2세, 증손자 찰스 3세]들로 대를 이어가고 있다. * 자식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. 차남인 [[조지 6세]]는 나름대로 유능하고 성격도 좋았지만, [[말더듬]]이 심하고 병약해서 어렸을 때부터 마음고생을 시켰다. 막내이자 5남인 [[영국의 존|존]]은 요절했다. 장남 [[에드워드 8세]]는 왕실 역사 상 전례가 없는 이혼녀와의 결혼을 하려고 왕위를 내던져 버리는 기행을 저질렀으며, 3남 [[글로스터 공작 헨리]]는 작은형인 조지 6세보다도 말더듬증이 심하고 소심하고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들려왔고 4남 [[켄트 공작 조지]]는 에드워드 8세마저 경악시킬 만큼 문란한 사생활을 자랑하는 희대의 개막장인 사람이었다. *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제정의 몰락을 보았다.[*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승전국과 패전국, 그리고 양쪽의 식민국들 대부분은 군주제가 폐지되고 [[공화정]]이 수립되었다.] 결국 고종사촌 형 [[빌헬름 2세]]와[* 다만 빌헬름 2세는 조지 5세의 아버지이자 본인의 외삼촌인 [[에드워드 7세]]에게 사탄이라고 패드립을 친 바 있다.] 친사촌 동생 [[카를 에두아르트]] 등, 본인의 친척들이기도 한 군주들이 폐위되는 것을 보았다. 어쩌면 본인도 저 꼴 날까봐 두려워 했을지도. * 이종사촌 동생 [[니콜라이 2세]]가 [[러시아 혁명]]으로 폐위되어 일가족과 함께 [[예카테린부르크]]로 유배되었을 때, 고종사촌 형 [[빌헬름 2세]]보다 친했던 그를 구하고 싶어했으나 영국 각료들의 반대로 차르 일가의 구출 및 망명을 그만두었다. 결국 니콜라이 2세 가족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했다고 한다.[* 그 이유는 니콜라이 2세의 아내인 [[헤센의 알릭스|알렉산드라 황후]]가 독일 [[헤센 대공국]] 출신이었기 때문이다. 당시 영국은 [[1차 세계 대전]]의 적국이었던 대독 감정이 아주 좋지 않아서, 알렉산드라 황후까지 망명시킬 경우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. 이 밖에도 [[피의 일요일]] 사건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인해 러시아는 물론, 타국에서도 니콜라이 2세의 평가는 최악의 폭군 그 자체였다.][* 참고로 조지 5세는 [[니콜라이 2세]]의 아내인 [[헤센의 알릭스|알렉산드라 황후]]와도 사촌 남매였다. 조지 5세의 둘째 고모 [[영국의 앨리스|앨리스 모드 메리]]의 딸이 알렉산드라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